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속성 논쟁 (문단 편집) == 중세 과학의 재평가와 논쟁의 시작 == 중세 과학이 재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다. 첫번째는 [[과학사학]] 항목에서도 다루고 있듯,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사]]를 현대 과학으로 진보하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라 본 관점에서 벗어나, 중세 과학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는 과학사가들이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프랑스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피에르 뒤엠의 주장이다. 뒤엠은 통계학의 기원을 추적하던 과정에서 중세 수학자들과 자연철학자들을 발견했다. 뒤엠이 생각하기에 이들의 작업은 근대과학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요, [[갈릴레오 갈릴레이]] 및 그의 동시대인들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의 일부를 예비한 것이었다. 그는 중세 과학을 연구한 것을 토대로 이렇게 결론지었다. >근현대가 정당한 근거에서 자랑하는 역학과 물리학은 중세 대학의 심장부에서 나온 학설들이 일련의 연속적 개선을 거쳐서 발전한 것이다. 뒤엠의 주장은 연속성 논쟁을 불붙였으며 논쟁은 20세기 내내 이어졌다. 영향력 있는 중세 연구자인 찰스 호머 해스킨스나 린 손다이크가 뒤엠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앨리제 마이어는 중세의 원전을 해석하고 뒤엠보다 치밀하고 신중하게 중세 자연철학을 분석했다. 그녀 역시 개념 면에서든 방법론 면에서든, 중세과학은 근현대 과학의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20세기 전반까지 연속성 논쟁은 그나마 조용하게 진행됐지만, 앨리스테어 크롬비 이후로는 논쟁이 한층 가열되었다. 크롬비는 "17세기 [[과학혁명]]을 촉발한 것은 13~14세기에 진행된 실험적, 수험적 방법의 성장"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역사가 [[알렉상드르 쿠아레]]는 이에 반박했다. 그는 근현대 과학의 기원을 요약정리할 때, 방법론이 그리 중요한 요소가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과학혁명은 중세과학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일종의 '돌연변이'라고 말했다. 에르넌 맥멀린 또한 크롬비의 주장에 반박하며 중세과학과 근대과학 사이에 개념적&언어적 연속성이 폭넓게 존재함은 인정했지만 방법론상의 연속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태도를 취했다. [각주] [[분류:과학사]][[분류:근대화]][[분류:논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